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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푸른색 나뭇잎과 수묵의 예술에 물든 수덕사

by 공간여행자 2025. 5. 13.

5월의 햇살이 따사로운 주말 오후에 예산의 덕숭산 남쪽 자락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산인 수덕사를 찾았다.

 

 

 

 

덕숭산 남쪽에 자리잡은 수덕사는 현존하는 백제 고찰의 하나로 창건에 대한 정확한 문헌기록은 없으나 백제 위덕왕(554-597) 재위시에 창건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덕숭산덕숭총림수덕사'라는 편액이 걸려 있는 수덕사 선문이다. 통상의 경우 일주문이 부처님 세상과 속세의 경계를 구분하는데 수덕사는 일주문 앞에 선문이 하나 더 있다.

 

 

선문을 지나면 오른쪽으로 바로 부도전이 보인다.

 

 

부도전을 지나 조금 오르면 오른쪽으로 수덕사근역성보관이 자리하고 있다.

수덕사근역성보관은 1998년 11월에 개관한 불교박물관으로 수덕사와 인근 말사의 불교 문화재 600점이 전시되어 있다고 하는데 이날은 휴관이라 관람을 할 수 없었다.

 

 

수덕사근역성보관을 지나 계속 오르면 드디어 수덕사의 일주문이 모습을 드러낸다.

일주문 왼쪽으로 선미술관과 수덕여관이 위치하고 있는데 이곳은 수덕사를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에 보기로 한다.

 

 

조금더 올라오니 금강문이 나오고 이어서 사천왕문이 방문객을 기다리고 있다.

 

 

사천왕문을 지나오면 수덕사 안내 표지판이 보이고 그 앞으로 황하정루의 모습이 올려다 보인다.

 

 

황하정루는 대웅전을 보호하고 사세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하는 중요한 전위누각이다.

 

 

황하정루를 지나 계속해서 이어지는 높은 계단을 올라오니 대웅전이 모습을 드러낸다.

황하정루의 웅장한 모습에 비하여 오히려 맞배지붕의 대웅전이 소박하고 단아해 보인다.

 

 

대웅전 앞에 위치한 '수덕사삼측석탑'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돌탑이다.

흔히 불가에서 탑은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종형물로 일종의 무덤이다. 석가모니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자신의 사리를 탑 속에 보관하라는 말을 남긴 뒤부터 승탑을 만들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에 나무로 만든 목탑을 세웠으나 삼국시대 말부터 석탑을 만들기 시작했다. 수덕사삼층석탑은 바닥돌부(기단부)가 2층으로 되어 있는데, 위·아래층 바닥돌 양쪽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새겼다. 몸돌부(탑신부)는 3층인데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으며 몸돌의 양쪽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새겨 넣었다. 지붕돌은 처마가 수평을 이루다가 끝부분이 살짝 들려져 있으며 지붕돌 받침은 4단으로 되어 있다. 꼭대기(상단부)에는 머리 장식을 받치는 네모난 받침돌 위에 구슬 장식이 올려져 있다.

수덕사삼층석탑은 통일신라 시대인 문무왕 5년(665년)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석탑의 전체적인 양식과 조각방법 등을 볼 때, 통일신라 시대의 양식을 따르면서도 고려시대 석탑의 특징이 잘 나타나므로 고려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대웅전 앞쪽 절마당 왼쪽으로는 범종각이, 오른쪽으로 법고각이 자리하여 가람배치의 안정감을 더해준다.

왼쪽 범종각

 

 

오른쪽 법고각

 

 

대웅전 우측 옆에 위치한 명부전에 앞으로 누군가의 소망들을 매달고 흰색의 연등들이 빼곡하게 달려있다.

 

 

주말이라 그런지 수덕사를 찾는 사람이 많다. 천천히 사찰 내부를 둘러보고 돌아서 내려온다.

올라올 때 미처 제대로 보지 못한 코끼리석등과 칠층석탑도 천천히 한번 보고 내려온다.

 

 

비구니 스님들이 기거하며 정진하는 환희대 쪽을 잠깐 둘러본다.

두명의 여승을 기리는 이니보탑이 있다. 경주 불국사의 다보탑 모습을 하고 있는 작은 탑이다.

 

 

원통보전은 현세의 관세음보살을 모신 전각이다.

 
 

다시 일주문으로 내려왔다.

내려오는 방향의 오른쪽으로 수덕여관과 감로당, 선미술관이 위치해 있다. 올라갈 때 보지 않고 남겨둔 곳이다.

 

 

고암 이응노 화백이 작품 활동을 하던 수덕여관과 우물, 암각화를 포함한 일대가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수덕여관은 화백이 1944년 구입하여 6.25전쟁 당시 피난처로도 사용하였으며, 1959년 프랑스로 건너가지 전까지 머물면서 수덕사 일대의 아름다운 풍경을 화폭에 옮기는 작업을 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이응노 선생은 1967년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렀고, 1969년 사면된 뒤 다시 프랑스로 떠나기 전 이곳에 머물면서 바위에 2점의 문자적 추상화로 암각화를 남겼다.

* 동백림사건 : 1967년 7월 8일 중앙정보부에서 발표한 간첩단 사건이다. 독일과 프랑스의 유학생과 교민을 간첩으로 지목한 사건으로 이응노 선생도 연루되어 고문을 당하였다. 이후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해 정부의 무리한 확대, 과장이 있었음이 밝혀졌다.

 

 

감로당의 모습이다.

 

 

고암 이응노 선생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선미술관을 관람한다.

 

 

선미술관까지 관람하고 돌아서 내려오는 길에 마주한 작품 '얼굴'이다.

자세히 보지 않고 올라와서 그런지 놓치고 지나간 것들이 많다.

 

 

수덕사를 둘러보고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오니 빼곡했던 차들이 거의 다 빠져나가고 없었다.

유명한 산사답게 찾는 이가 많아서 차분히 둘러보기는 어려웠지만 예술과 종교가 어우러진 수덕사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