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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밀란 쿤데라 - 농담(2023. 9월)

by 공간여행자 2023. 11. 6.


농담이라는 이 소설에서 가장 몰입하게 되었던 인물은 당연히 주인공인 루드비크이다. 루드비크가 겪게되는 농담같지만 현실적인 슬픈 삶의 격변을 따라가면서 그가 이런 삶을 살게된 출발점을 생각해 보게되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사랑하는 여인에게 보낸 엽서 한장이었다. 그는 왜 그런 엽서를 그녀에게 보냈을까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았다. 루드비크가 사랑하는 여인 마르케다에게 보낸 엽서의 내용이 다른 어떤 대사보다 더 이 소설을 관통하는 핵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낙관주의는 인류의 아편이다! 건전한 정신은 어리석음의 악취를 풍긴다. 트로츠키 만세! 루드비크". 루드비크는 그가 아닌 공산당을 선택한 마르케다를 비유적으로 원망한 것일까 아니면 정말 그 순간만큼은 공산당을 미워한 것일까? 이 소설 전반을 가로지르는 해석은 이 글이 농담이라는 것이지만 주인공의 입장에서 그 순간은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할 수 없게 만든 공산당이 싫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단순한 질투심만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 엽서에 담긴 짧은 글로 인해 한 사람의 삶이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방향으로 흐르게 되고 고난과 역경이 가져온 복수심마저도 농담처럼 끝나버리는 것을 보면서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생각해 보게된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루드비크의 엽서와 같은 행동들을 가끔 경험하게 되는 것 같다. 순간의 기분이나 상황에 투정섞인 반발심을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순간적인 감정의 반발심으로 던진 말이나 행동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으로 흐르는 경우도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쿤데라의 농담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어보았을 개연성있는 상황을 바탕으로 시대의 상황과 민중의 현실을 작품에 담았다는 것이 너무나도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우리가 일상에서 하는 농담에는 여러가지 뜻이 담겨 있을 수 있다. 그냥 웃기려고 하는 농담, 상대방을 놀리려고 장난삼아 던지는 농담, 순간적인 상황에 대해 본인의 순발력과 재치있는 입담을 뽐내려고 던지려는 농담, 그리고 뭔가를 빚대어 어떤 의도나 비난, 멸시 등을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농담 등이 있을 수 있다.
 
주인공인 루드비크가 어떤 의도를 담아 마르케다에게 농담을 던졌는지 짐작은 할 수 있지만 정확히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쿤데라는 사회적 상황과 주인공의 상황을 연결지어 시대를 풍자했던 것 같다.
 
사랑이라는 개인적인 감정으로 아주 사적인 상황에서의 짧은 비유가 담긴 농담이 한 개인을 삶을 송두리채 바꿔버리는 시대를 고발하고자 한 것 같다. 그것은 밀란 쿤데라 자신이 살고 있었던 소련에 점령당한 공산주의 사회 체코의 현실이자 개인의 농담조차 검열의 대상이 되는 숨막히는 감시사회에 대한 고발이었던 것 같다.
 
그러한 상황에서 주인공 루드비크의 복수는 통쾌하게 성공한다기 보다 오히려 그에게 또 다른 슬픔과 고뇌 그리고 좌절을 가져다 준다. 루드비크의 복수의 대상은 누구였을까? 아니 누구여야 했을까? 친구인 제마네크일까? 아니면 공산주의라는 시대의 체제였을까?
 
상처받은 주인공의 안식처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던 민속예술의 세계 마저도 결국 자신이 처한 운명과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깨달았을 때 주인공이 느꼈을 좌절감은 어떠했을까? 이 역시 공산화된 체코에서의 민중의 삶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공산주의 사회체제라는 시대의 거대한 힘 앞에 맞서는 개인의 몸부림이 얼마나 힘겹고 어려운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 같다. 농담이 농담이 아닌 농담같은 세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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