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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갑사로 가는 길(2025. 1. 11)

by 공간여행자 2025. 1. 11.

매서운 겨울 추위가 한창이다.
 
특별한 일정없는 주말 오후,  간간히 내린 눈으로 도로가 살짝 얼어 있어 멀리는 나가지 못하고 근처에 있는 갑사를 찾았다.
 
갑사로 가는 길은 잎을 벗어버린 나무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 앉은 하얀 눈으로 덮혀있다. 

 
 
계룡산국립공원 탐방로 안내 표지판이 보인다. 갑사를 거쳐 동학사와 신원사로 가는 길이 보인다.

 
 
계룡산갑사 일주문이 탐방객을 맞아준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고목들이 즐비한 단아한 길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갑사로 가는 길, 이 길이 왠지 모르게 좋다는 탐방객의 목소리가 들린다. 같은 느낌을 받으며 천천히 오른다. 

 
 
얼마 걷지 않아 사천왕문이 모습을 드러낸다.
 
- 사천왕 -
 
동쪽 지국천왕은 안민(安民)의 신으로 선한 자에게 상을 내리고 악한 자에게 벌을 주어 항상 인간과 국토를 보호하기 위한 천왕이다. 왼손에는 카을 쥐고 오른손 바닥에는 보석을 올려놓고 있으며 건달바를 거느리고 있다.
 
서쪽 광목천왕은 잡어, 악안으로 불리는데, 이는 웅변으로 나쁜 이야기를 물리치거나 눈을 크게 부릅뜬 위엄으로 나쁜 것을 물리치기 때문이다. 왼손에는 보탑과 오른손에는 삼지창을 들고 있고 용과 비사사를 거느리고 있다.
 
남쪽 증장천왕은 자신의 위덕으로써 만물이 태어날 수 있는 덕을 베풀겠다는 서원을 세운 천왕이다. 오른손은 용을 잡고 왼손은 용의 여의주를 들고 있다. 구반다등 무수한 귀신을 거느리고 있다.
 
북쪽 다문천왕은 비사문천이라고도 하며 항상 부처님의 도량을 지키면서 설법을 듣고, 왼손에는 비파를 들고 있으며 야차와 나찰을 거느리고 있다.

 
 
완만한 오르막 길을 따라 계속해서 갑사로 오른다. 길 끝편으로 갑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갑사의 범종루가 올려다 보인다.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갑사의 강당이다.
 
강당은 승려들이 법문을 읽고 공부하던 건물이다. 전통적으로 사찰을 세울 때에는 강당을 가장 뒤편에 두고 그 앞에 대웅전을 두는데, 갑사에서는 강당이 대웅전 앞에 있다. 강당 건물 보수 공사를 하면서 대들보에 쓰인 상량문이 발견되었는데, 이에 따르면 이 건물은 원래 갑사의 정문이었다고 한다. 광해군 6년(1614)에 처은 지어진 후 정조 22년(1798)과 고종 27년(1890)에 보수하였다고 한다.

 
 
갑사의 전체적인 건물 앉음새를 종합안내판을 통해 머리속에 넣어본다.

 
 
올라오는 길에 본 범종루의 앞모습이다.

 
 
적묵당 뒤로 눈 덮힌 계룡산의 정상이 올려다 보인다

 
 
갑사의 중심을 차분하게 지키고 있는 단아한 모습의 대웅전이다.
 
가운데로는 계단이 없고 양쪽으로 계단을 두어 대웅전에 오르게 되어 있다.

 
 
이곳은 칠성, 산신, 독성의 삼성을 모신 삼성각이다.
 
칠성은 북두칠성을 말하는데 별나라의 주군으로 인간의 복과 수명을 맡고 있으며, 독성은 인연의 이치를 홀로 깨닫고 성인이 되어 말세 중생에게 복을 내리는 존재이다. 산신은 우리 민족 고유의 산악신앙의 토속신으로, 호랑이와 더불어 나타나는데 재물을 담당한다.
 
각각 도교, 불교, 토속신앙의 한 표현으로, 불교가 토착화하는 과정에서 여러 신앙 요소가 합쳐진 형태이다. 본래 각가의 건물을 지어 삼성을 모시나 갑사 삼성각에서는 한 속에 모신 것이 특징이다.

 
 
월인석보판목보장각이다.
 
월인석보목판은 [월인석보]를 새겨 책으로 찍어내던 판각으로서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것 중 유일한 판목이다. [월인석보]는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을 합하여 세조 5년(1459)에 편찬한 불교 대장경이다.
 
[월인석보]는 본래 57매 233장으로 모두 24권이었으나 현재는 21권 46매만 남아있다. 이 판목은 선조 2년(1569) 충청도 한산에 사는 백개만이 시주하여 활자를 새기고, 충남 논산 불명산 쌍계사에 보관하였다가 현재 갑사에 소장되어 있는데, 70여년 전에 입수하였다고 한다.
 
계수나무에 돋을새김으로 새겼고, 판목의 오른쪽 아래에 시주자의 이름과 새긴 이의 이름이 있다. 내용표기에 있어서는 방점과 글자획이 닳아 없어져 변모된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불교대장경이라 할 수 있는 것으로, 15세기 당시의 글자와 말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국어변천을 알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관음전과 대적선원을 들러보고 삼신불괘불탱보호각으로 향한다.

 
 
갑사의 삼신불 괘불탱은 국보 제298호로 지정되어 있다.

 
괘불은 그림으로 그려서 걸어 놓은 부처의 모습으로, 야외 법회에서 사용된다. 갑사 삼신불 괘불탱은 길이 12.47m, 폭 9.48m이 초대형 괘불이다.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석가모니불과 노사나불 등 삼신불이 화엄 진리를 설법하는 장면과 석가모니의 제자인 사리불이 설법을 청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어서 '비로자나삼신불화'라고도 불린다.
 
이 작품은 17세기 괘불화를 대표하는 수작으로, 효종 1년(1650)에 완성되었다.
 
갑사 삼신불 괘불탱 보호각이다.  아쉽게도 괘불화를 직접 보지는 못하고 보호각의 모습만 담아보았다.

 
 
갑사는 1980년 10.27법난의 피해사찰이다.
 
10살 어린시절의 일이라 기억에 남아 있는 건 없지만, 밖에 나가서 절대 말 조심 하라시며 말을 함부로 하면 잡혀간다며 10살 어린애에게 까지도 입단속을 하시던 어른들의 두려움 어린 모습이 흐릿한 기억속에 또렷이 남아있다.

 
 
갑사의 팔상전이다.
 
갑사 팔상전은 팔상탱화와 신중탱화를 모시는 곳이다. 팔상탱화는 석가여래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일대기를 여덟 장면으로 나누어 그린 것으로 1910년 작품이다.
 
신중탱화는 불교를 지키는 우리나라 재래의 신들을 그린 그림이다. 건물은 규모가 작은 편이지만 지붕 처마를 받치는 장식인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며 격식을 갖추었다.
 
지금은 공사중으로 출입이 금지되어 있어 이구에서 사진으로만 담아본다.

 
 
표충원이다.
 
갑사 표충원은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승병을 조직하여 활약한 영규대사, 서산대사, 사명대사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서산대사와 사명대사는 평양을 되찾는 전투에서 크게 공을 세웠고, 공주 출신의 영규대사는 최초의 승병장으로 갑사에서 승병 수백명을 모아 참전하였다.
 
조선 후기 공주의 학자 정규한이 쓴 글에 따르면 충청감사 이형원의 주도로 자금을 모아 순조 원년(1801)에 재향을 올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곧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철폐되었다가 고종31년(1894)에 복원되었다.

 
 
공우탑이다.
 
'공우탑'은 소의 공적을 기린다는 의미로, 갑사 공우탑은 조선 후기 갑사의 중건 과정에 얽힌 전설에서 비롯되었다.
 
갑사는 나라에서 토지를 내려줄 만큼 크고 중요한 절이었으나 1597년 정유재란으로 건물 몇 채만 남게 되었다. 선조 37년(1604)에 나라의 지원을 받아 대웅전과 진해당 등을 다시 세웠다.
 
전설에 따르면 당시 주지스님의 꿈에 황소가 나타나 절을 지어 주겠다고 약속했고, 그날 이후 소 한 마리가 나타나 매일 공사에 필요한 재목을 등에 싣고 왔다. 그러나 갑사가 완공되는 날 갑자기 소가 죽었고, 이에 스님들은 갑사 중건에 도움을 준 소의 공을 기리고자 이 탑을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갑사의 동종은 왕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조선 선조 17년(1584)에 만들어졌다.
 
동종이란 청동으로 만든 종을 말하며, 종의 표면에는 지장보살의 모습과 종의 내력을 적은 글이 있는데, 이를 보면 1583년에 북방 오랑캐가 난을 일으켜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에 있는 사찰의 종을 모아 무기로 만든 탓에 이듬해 갑사에서 철 8천 근을 들여 다시 종을 만들었다는 내용이 있다. 
 
또 여기에는 갑사사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갑사가 과거에는 갑사사로 불렸음을 말해 준다.
 
갑사 동종은 종의 가장 위쪽에 있는 용의 모습을 한 고리인 용뉴가 잘 남아 있는 것이 특정이며, 현재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양호하다.

 
 
산사에 내련 겨울을 만끽하며 간성정을 지나 대적교를 건너 대적전으로 넘어간다.

 
 
대적전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은 본존인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로 이루어져 있는 불상이다. 갑사는 1597년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가 1654년 효정 5년을 전후로 다시 고쳐 지었는데, 삼존불은 이때 함께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아미타불은 죽은 사람을 서방의 극락세계로 인도하여 영혼을 구제하는 부처이고, 관세음보살은 자비를 상징하며, 대세지보살은 중생의 구제를 의미한다.
 
아미타불은 양손의 엄지와 중지를 맞대어 무릎 위에 올린 채 오른손은 손등을 위로 향하게 하고 왼손은 손바닥이 위로 향하게 두었다. 목에는 번뇌와 업, 고통을 상징하는 삼도(부처의 목에 있는 세 개의 주름)가 새겨져 있으며, 옷 주름은 부드러운 선으로 묘사되어 있다. 좌우의 두 보살은 모두 머리에 보관을 쓰고 손에 연꽂 가지를 들고 있다. 
 
관음보살은 보관에 아미타불을 새겨 넣었으며, 배와 양 무릎에 꽃 모양의 장식을 단 화려한 천의를 입은 채 미소를 띠고 있다.
 
아미타불의 오른쪽에 있는 대세지보살은 보관에 보배 병이 새겨져 있으며, 여래가 입는 단순한 형태의 대의를 걸치고 다소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다.
 
삼존불의 넓적하면서도 편평한 얼굴 표현과 균형 잡힌 몸, 협시보살이 옷을 입고 있는 착의법이 서로 다르게 표현된 점 등은 17세게 중반 충청도 지역에서 주로 만들어진 불상의 특징이다.
 
내부는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사진에 담지 못하고 눈으로만 담아서 왔다. 사진보다 직접 가서 보는 것이 훨씬 더 엄숙성과 예술성을 제대로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갑사를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에 계룡산국립공원의 전체적인 모습을 안내도를 통해 한번더 눈에 담아본다.

 
 
4월에 황매화 축제가 열린다고 하니 4월에 한번 더 와보기로 하고 오늘은 여기서 발길을 돌린다.

 
 
이제 계룡산 3대 사찰 중에 동학사와 갑사를 둘러보았다. 다음에 시간을 내서 마지막 남은 신원사를 찾아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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